모든 기업의 사명과 비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고객 만족’이다. 이러한 고객 지향적인 문화가 인터넷 세상에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최근 소프트웨어 및 인터넷 관련 분야에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서로 교류의 폭이 좁던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들이 영역 구분을 넘어 소통하기 위한 만남의 자리가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활발하게 주선되고 있다. 이들이 모이는 이유는 ‘사용자에 대한 고려와 배려’를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협력과 협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업계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Prologue
황리건 과장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개발자인지 기획자인지 순간 잠시 생각하게 만들 때가 있다. NHN에 근무하며 플래시 전문가로 유명세를 타던 그는 현재 한국마이크로소프트로 자리를 옮겨 UX 전도사(User Experience Evangelist)로 활동 중이다. 이력만 놓고 보자면 그는 개발자이다. 하지만 그의 말 한 마디 마디에는 개발자 이상의 내공이 담겨 있다. 아마도 UX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오랜 기간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교류를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UX 세상
차세대 웹에 대한 투자 그 중심에는 ‘사용자 경험(UX)’이 있다. 발 빠른 기업들은 이미 고객을 위한 웹 사이트 또는 서비스뿐 아니라 사내 시스템 개발에도 최신 사용자 경험과 관련한 기술과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활발한 분야는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이다. 현재 국내의 경우 중앙일보, 조선일보, SBSi, Mnet 등에서는 활발히 사용자 경험(UX) 관련 투자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좋은 사례가 현재 많습니다. 조선일보의 딥줌포토, SBSi 뉴스 뷰어 NView, 엠넷미디어 TVDeep 등의 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해외에서도 물론 사례가 많습니다. 영국 도서관의 책 보기 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버추얼어스 등의 예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용자 경험(UX) 관련 기술은 산업 분야로 그 활용 범위가 넓어질 전망입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헬스케어 분야인데,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전문 의료진과 함께 의료 정보 서비스의 디자인 가이드라인 제시를 위해 추진 중인 MSCUI(Microsoft Health Common User Interfac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온 사용자 경험(UX)의 시대,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개념의 설명으로 황리건 과장은 백화점을 예로 들었다.
“우리가 소프트웨어 또는 인터넷을 통해 만들거나 얻는 정보란 결국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결과물을 얻기까지의 과정 이게 바로 사용자 경험(UX)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과 비교해 볼까요?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을 ‘정보’라고 해보죠. 물건을 사기 위해 우리가 백화점에 발 길을 디디는 순간부터 우리의 경험은 시작됩니다. 백화점의 실내 장식, 쇼핑의 편의를 위한 각종 배려, 점원의 서비스 등 우리는 물건을 사기까지 이런 저런 경험을 하게 되죠. 웹이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어떤 과정을 어떻게 거치는 지가 바로 사용자 경험(UX)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경험(UX)은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한 그런 유행어가 아니다. 데스크톱 PC가 우리의 일터와 가정 한 켠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부터 들려왔던 이야기다.
▶ 사용자 경험에 대한 우리의 기억
사용자 경험(UX)의 가치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 혁신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예전에는 주로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사이트 관련 UI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요즘에는 보다 광의의 분야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스크톱 PC 및 인터넷과 관련한 우리의 사용자 경험(UX)의 발전은 어떤 궤적을 그리며 2008년 오늘 날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도스(DOS) 시절 우리는 커맨드라인에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PC와 상호작용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윈도우의 등장으로 GUI(Graphic User Interface) 시대가 열리며 마우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지요. GUI와 마우스 또한 초기에는 사용자들이 생소해하고 불편해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면서 사용자들은 컴퓨터를 다루는 과정에 있어 보다 편리하고, 간단히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 시작했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애플의 매킨토시, IBM의 OS/2 등이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기도 전에 GUI는 등장했다. GUI 기반 컴퓨팅의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더글라스 엥겔바트(D. Engelbart)라는 사람이 그래픽 기반의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처음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람이 마우스도 발명했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사람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더 편리할 지에 대한 고민을 발명으로 이뤄낸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업적은 제록스에 의해 제록스 스타라는 컴퓨터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 하지만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탓에 제록스 스타는 역사 속에만 그 이름만 기록되고 있다.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아이디어를 대중이 받아들이게 된 것은 데스크톱 PC가 대중화 되기 위한 기반이 조성되면서부터였다. IBM PC와 도스 사용자 저변이 확대된 이후 특별한 교육 없이도 직관적으로 사용 가능한 환경에 대한 시장의 잠재 욕구가 윈도우 3.1 등장 이후 표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윈도우 95가 등장하면서 데스크톱 PC에서의 사용자 경험(UX)은 세대를 달리하게 된다. 이후 윈도우 비스타가 출시될 때까지 사용자들은 GUI가 어느 선까지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지를 봐왔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PC와 관련한 GUI의 혁신은 GUI 기반 운영체제와 마우스가 등장했을 때에 못지않은 큰 변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제 마우스 대신 우리의 손이 입력의 주요 수단이 될 예정인 것이다. 얼마 전 사용자 경험(UX)을 메인 주제로 다루는 행사인 REMIX 2008에서는 윈도우 7에서 선보여 질 멀티터치 인터페이스가 소개되기도 했다. 컴퓨터와 사람 간 연결이 또 다른 역사의 페이지가 시작된 것이다. 새로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인터넷 세상도 마찬가지다.
▶ 인터넷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가?
최근 인터넷에서도 사용자 경험(UX)이 화제다. ‘정보의 바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인터넷을 이렇게 불렀다. 하지만 웹 2.0의 시대인 2008년 현재 인터넷은 이제 달리 설명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터넷 사용자들은 단순히 웹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사용자들은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 스스로 정보를 만들고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기 보다 인터랙션을 위한 플랫폼이다.
“인터넷 붐이 일면서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실제로 초기 웹 디자인 전문가들 중 인쇄 매체 등 오프라인 디자인 업에 종사하시던 분들이 계셨죠. 초기 인터넷 관련 UI 디자인 추이는 주로 미적인 것과 창조적인 부분이 강조되었던 듯 합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중반 RIA(Rich Internet Application)가 새로운 테마로 등장하면서 기능성과 함께 디자인적으로는 간결함이 주목 받기 시작했습니다. 플래시(Flash), 에이작스(Ajax) 등 기술적으로 표현 방식이 다양해 지면서 기존 웹이 갖는 인쇄물을 옮겨 놓은 듯한 것이 아닌 간결하면서도 상호작용성이 풍부한 웹 페이지들이 늘기 시작했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상호작용성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들은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해오고 있다. 바로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과 웹 사용성(web usability)이다. 인터넷을 단순한 서비스 채널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늘면서 예전처럼 정보를 예쁘게 배치하는 것만 가지고는 사용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웹이 갖는 접근성과 함께 일반 소프트웨어 못지 않은 강력한 사용성까지 충족되는 환경이다.
“사용자 경험(UX)을 증진을 위해 여러 고려 사항이 있습니다. 이중 핵심이 되는 것은 접근성과 사용성입니다. 언뜻 어려운 개념 같지만 그 기저에는 사용자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깔려 있다고 보면 쉽게 이해 갈 겁니다. 소프트웨어가 되었건 인터넷 사이트가 되었건 접근하지 못한다면 사용을 해보지도 못하게 됩니다. 사용자가 어떤 운영체제나 브라우저를 쓰건 접근에 문제가 없어야 하지요. 접근성이란 선행 과제가 해결되면 다음으로 사용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둘 간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의자를 예로 들어 일단 앉을 수 있어야겠지요. 이게 접근성입니다. 다음 안락함을 줄 수 있도록 폭신한 재료로 만들어 졌는지, 앉은 사람의 취향에 맞도록 디자인 되었는지 등에 대한 고려가 사용성이라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 둘을 하나의 관점에서 잇는 것이 바로 사용자 경험입니다.”
정보의 생성과 확산의 메커니즘이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변해오면서 웹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사이에 한 가지 공통된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 공급자 중심의 UI 디자인과 기능 개발 마인드로는 빠르게 변해가는 사용자들의 욕구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 해결에 업계는 어떻게 나서고 있을까?
▶ 사용자 경험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들
최근 몇 년간 사용자 경험이란 주제를 다루는 행사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이들 행사를 가만 보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참여가 상당히 적극적이란 점이 눈에 띈다.

“사용자 경험이란 것은 정말 다양한 전문 분야들의 총체이자 합입니다. 제가 글을 올리는 UX 전문 팀 블로그인 UX 팩토리만 하더라도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참여로 운영됩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의 발전을 위해 소통해 나아갈 수 있는 데에는 사용자 경험을 증진시키겠다는 것 보다 큰 원칙과 같은 관심사가 있어서라고 봅니다. 사실 이런 이종 분야 간의 소통에 대한 노력은 여러 곳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주관하는 REMIX, 다음에서 주최하는 UI Dev Day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전에는 같은 자리에서 머리를 맞댈 일이 별로 없던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새로운 사용자 경험 창조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자리가 점점 많아지는 듯 합니다”
앞으로 사용자 경험 전문가들의 중요성이 굉장히 커질 전망이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IT 관련 업체들에 UX란 이름이 붙은 팀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그리고 과거 우리가 웹 에이전시라 기억했던 업체들 역시 단순히 웹 사이트를 디자인하던 역할을 넘어 사용자 경험 관련 마케팅 서비스까지 제공 가능한 쪽으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업계 전반이 사용자 경험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며 인터넷 강국으로 이름을 드높인 우리나라가 새로운 사용자 경험 창출에 있어 어떤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게 되길 즐겁게 상상해 본다.